저자 : 마크 X. 엘리엇

역자: 이훈, 김선민

출판; 도서출판 푸른역사. 2009년 12월, 초판 1쇄  

 

일반적으로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에 대한 통설들은 250년간 중국을 지배하면서 중국에 동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만주족이 한족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런 노력들을 팔기제(八旗制)라는 독특한 군사, 행정 조직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다고 본다. 팔기제는 아마도 원래는 만주족의 부족 편성이었을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각 부족의 독자성이 상당히 강하던 만주족들에게서 각 부족이 연합하여 전쟁을 할 때는 부족과 군사 조직이 일치했을 것이니 주요 부족들 중심의 군사 편성을 했을 것이고 어느 시점에서 8단위의 조직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중국을 정복하고 중원으로 이동하면서 만주족은 이 8기제를 중심으로 군사 조직도 만들고 만주족 구성원들도 모두 이 8기제에 소속되도록 하면서 행정조직으로서도 기능하게 된다. 정복자의 군사력을 만주족만으로 충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장 믿을 만한 몽골족도 8기제에 편입시키고, 중원으로 들어가기 전 복속한 한족을 중심으로 한족 8기도 만든다. 그리고 청나라 핵심 군사력은 이 8기제를 중심으로 구성한다. 8기에 소속된 사람을 기인(旗人)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하는데 이는 만주족의 확대된 개념으로까지 볼 수도 있다. 북경과 지방의 주요 도시에는 이들 8기에 소속된 군인을 파견하고 이들 8기군과 그 가족들인 기인이 거주하는 별도의 공간인 만성(滿城)을 쌓고 한족들과 분리시킨다. 이 책은 이 팔기제의 형성과 변천 과정을 통해 만주족의 중국 지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연구한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저자는 팔기제에 관심이 많아 이 책을 썼지만 독자인 나는 팔기제보다는 책에 나타난 만주족의 역사나 풍습에 관심이 많다. 청나라 황실이 각 지역의 팔기군 관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만주족다움을 지켜가기 위해 꼭 지켜야 할 것으로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이 있었는데 말타기, 활쏘기, 만주어 이 세 가지였다. 황제와 관리들의 편지에서 가장 큰 걱정 중 한 가지가 만주족이 이들 중요한 일들이 소홀히 하고 숙련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황제들은 만주족의 자녀들이 이들 세 가지 중요한 일보다 한문 공부에 몰두하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만주족이면 누구나 활을 만들 수 있었는데 한족 장인에게 활을 사서 쓴다는 사실을 걱정하는 고위 관리의 걱정도 보인다. 만주족은 활쏘기 중에서도 마상궁술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마상궁술하면 떠오르는 것이 고구려 벽화다.


만주라고 일컬어지는 유라시아 동북부 역사를 돌이켜보자. 부여의 일파가 지금의 집안현 일대로 이동하여 토착세력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건국한 후 영역을 확대해나갔다. 그리고 지금의 만주를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동북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넓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고구려 왕족이 아닌 토착 세력이었다. 부여를 비롯해 당시 유라시아 대륙 동북부에 살던 사람들은 농경을 기본으로 하면서 수렵을 같이 하던 종족들이었다. 당시 말갈족이라고 사서에 나오는 특정 종족을 포함해 그 지역에 살던 백성들은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도 대부분 그 일대에 살았을 가능성이 많다. 당나라에 잡혀간 사람들은 수도권에 살던 일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 왕족이 다시 발해를 세웠을 때 그 지역의 다수를 점하던 백성들은 말갈족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들은 발해가 망한 이후에는 여진족이라 불리는 종족으로 재통합되었다. 여진족은 잠시 금나라를 세우기도 했지만 다수는 역시 지금의 만주 일대에 살았다. 그리고 후일 청나라를 건국하면서 그들의 다수는 만주를 비우다시피 하면서 중국 본토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한족에 섞여 들어갔다. 내 생각에 고구려 백성들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받은 후손은 고려, 조선의 백성이 아니라 청나라 시기까지의 만주족이 아닐까? 물론 민족의 정체성에 유전자 외에도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적어도 유전자로 따지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활을 잘 쏜다는 뜻의 동이족에 적합한 종족도 청나라를 세운 초기까지 활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던 만주족에 더 적합한 말일 것 같기도 하다.    


후금 시절 만주족은 중국 대륙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몽골족을 자기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 때 만주족과 몽골족이 가깝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칸이 한 말이 인상적이다. “중국과 조선은 말이 달라도 의복과 생활양식이 비슷하고, 만주족과 몽골족은 말이 달라도 의복과 생활양식이 비슷하다.” 만주족의 눈에는 조선이 한화(漢化)가 상당히 진행된 나라로 보였던 것 같다. 다시 말해 그들의 눈에는 조선은 한족이 된 오랑캐쯤 되었을 것이다. 실제 청나라는 건국 과정부터 몽골족을 우대했고 팔기제에 있어서도 한족보다는 몽골족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조선은 한족과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사실 조선의 지배층이 스스로 소중화를 자처했으니 정확히 본 것은 사실이다.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는 건주여진의 한 부족장이었다. 누르하치는 만주 지역의 각 여진족과 여진족은 아니지만 만주 지역에 있던 소수 민족을 통합해 만주에 후금을 세웠다. 만주족이란 이름은 청을 건국한 후 어느 칸이 더 이상 여진족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생긴 이름이다. 만주족은 어느 정도 세력을 키운 후 만주어를 기록할 문자를 만드는데 몽골문자를 흉내 내어 만들었다. 말이 설사 다르다 하더라도 같은 알타이 계열 언어이니 만들기 쉬웠을 것이다. 당시 청나라가 만주 문자로 조선의 한글을 채택했더라면 후일 우리가 만주어를 연구하는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사실 몽골문자(키릴 문자를 사용한 지금의 문자가 아닌 전통문자)나 만주문자는 엄청 복잡해 설사 누군가 만주어를 공부한다 해도 상당히 애를 먹게 되어있다.


지금의 중국 국경은 청나라 시대에 확대한 것이다. 티벳, 윈깡(위구르 자치구)은 다 이 때 확대한 영역이다. 중국인들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개척한 국경을 자신들의 영토로 정해 엄청난 지하자원을 확보했다. 당시 청나라가 자기 제국에 속한다고 정해놓은 영역 중 중국이 아닌 곳은 몽골의 절반(현재의 몽골공화국, 나머지 절반인 내몽골은 중국 영토)과 한반도 정도이다. (베트남도 청나라 시절 제국의 영토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중국에게 영토를 넓혀준 만주족은 이름뿐인 소수민족으로 중국 국민이 되어서 한다.  


독서후기를 적다가 옆길로 샜다. 만주족은 인구가 350배나 되는 중국을 250년 정도 통치했다. 중국인들도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신기해할 정도다. 저자는 만주족이 동화되었다기보다는 독자적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팔기제로 대표되는 통치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출처 : 안동에 사노라면
글쓴이 : 사노라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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