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지역을 일컫는 지명에는 가나안, 이스라엘, 유대, 팔레스타인, 등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이름들이 많기도 하다, 이 명칭의 근원처럼 이스라엘 전쟁의 근원도 제대로 파악할려면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가 아니라 모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쩌면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날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을 지역이 있다면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발단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이라는 남의 땅에 나라를 세움으로서 전쟁이 촉발되었다는 주장은 무식의 소치이다, 며칠 전 조선일보 칼럼에서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자가 많은 것을 이유로 팔레스타인을 피해자로, 이스라엘을 가해자로 묘사했었는데, 이 역시도 무식의 소치이다, 조선일보 칼럼의 논리대로라면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독일과 일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가 유대인을 이끌고 애굽에서 탈출했을 때, 지중해변을 따라 가나안으로 북상했다면 가나안은 홍해를 건너 두어달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광야가 펼쳐진 시나이반도 방향으로 남하했다, 그것은 지중해변 노선이 전쟁이 빈발하는 지역이라 경비가 철통 같았거나, 아니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블레셋'이라는 강력한 족속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거나, 둘 중의 하나인 이유로 모세는 방향을 틀어야 했다,

블레셋이 자리잡고 있는 가나안 입구, 이 지역이 현재 화염이 치솟고 있는 '가자지구'이고, 팔레스타인이라는 명칭도 블레셋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은 모세로부터 이천여 년 후에 붙여진다, 블레셋인도 가나안의 토착민은 아니었다, 그리스 계열의 해양민족으로 약탈을 다니다가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었고, 정착 시기는 모세의 후손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던 시기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블레셋은 이집트 람세스 3세와 전쟁을 할 정도로 강성한 세력이었고, 유대인의 가나안 전쟁은 블레셋과의 한판 전쟁이라고 할만 했다, 삼손의 머리를 잘랐던 데릴라가 블레셋인이었고, 장님이 된 삼손이 마지막 힘을 짜내어 신전 기둥을 무너뜨리던 곳도 블레셋이었다, 유대왕 사울이 자살을 택한 것도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 때문이었고, 다윗의 돌팔매에 쓰려졌던 골리앗은 블레셋의 대표 전사였다,

가나안 정복이 끝났다고 해서 유대인들의 고난의 행군은 끝이 난게 아니었다, 유대인들의 원조 조상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큰 민족을 세워 주겠다는 신의 계시를 받고 가나안에 정착했을 때부터, 모세가 그들의 민족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방문했을 때부터, 유대인을 선택한 신의 선택은 유대민족은 인류사가 끝날 때까지 '고난' 뿐이라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대인은 두 번의 망국에, 민족이 흩어지는 바빌론 유수와 디아스포라가 있었다, 로마제국은 유대 전쟁을 진압한 후에 신전을 파괴하고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의 출입을 금지시켰으며, 유대인들의 신전 접근은 1년에 한번 신전이 파괴된 기념일에 허용되었다, 이때부터 유대와 이스라엘의 지명 사용을 금지하고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을 쓰게 했다, 일종의 유대 말살 정책이었다,

로마제국의 반유대정책은 기독교도들의 반유대감정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세계사를 관통하는 반유대주의라는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다, 유대인은 직업을 제한 받았고 게토라는 유대인 거주지역에만 거주해야 했고, 가슴에는 유대인이라는 표시로 노란 별 표시를 달고 다녀야 했다, 심지어 십자군 전쟁으로 예루살렘이 '해방'되었을 때도 기독교도들에게 유대인은 무슬렘과 함께 쳐죽여야 할 적이었다,

이런 연유로 유대인들은 '더러운 직업'에 종사해야만 했고 그들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그들만의 거주지에서 폐쇄적으로 생활해야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정체성은 유대인들의 고집이나 폐쇄성 때문에 지켜진게 아니라 역사와 인류가 유대인들을 고립시켰기 때문에 유지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종종 권력자로들부터 추방 명령을 받아야 했다, 여기에는 모든 재산은 놔두고 몸만 나가라는 단서가 붙곤 했다, 사람들에게 유대인은 육체의 병을 일으키는 근원이자 정신을 흐리는 악마로 지목 되었다, 항상 희생양은 유대인이었고, 인류 역사에서 유대인은 불가촉천민이었다,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은 이런 서양문명의 반유대주의의 절정물이었다,

신전이 파괴되고서부터, 담벼락만 남았던 성벽 위에 이슬람의 거대한 황금 사원이 세워지고 난 후에도 지금까지, 유대인들은 1년에 단 한 번 신전을 찾아와 그들 신전의 유일한 폐허인 성벽 앞에 서서, 고난에 찬 그들의 운명을 한탄하며, 또는 그들 조상의 화려했던 영화를 그리며, 그리고 어디에도 없는 그들의 나라, 기다려도 오지않는 메시아를 꿈꾸며 그들은 통곡을 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통곡의 벽이라 불렀다,

히틀러의 가스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은 레지스탕스들과의 접선을 통해 수많은 메세지를 철조망 밖의 서방세계로 내보냈다, 가스실로부터 그들을 구출해 달라는 메세지가 아니었다, 죽음의 가스실, 죽음의 생산공장의 가동을 멈추기 위해 자기들의 머리 위로 포탄을 퍼부어 달라는 것이었다, 오지않는 폭격기, 오지않는 답장을 기다리며 유태인들은 죽어갔다,

로마제국에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마지막 유대 저항군 960여 명은 마사다 요새에서 최후의 항전을 계속했다, 2년여를 버티다가 최후의 순간에 마사다 저항군은 자결을 선택했다, 자기 식구를 먼저 죽이고, 제비뽑기로 뽑힌 10명이 나머지를 죽이고, 마지막 1명이 나머지를 죽이고, 최후의 1인은 자결했다, 현재 마사다는 신생 이스라엘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사관생도들은 졸업식 때마다 마사다를 방문하여 이런 구호를 외친다, "마사다를 상기하자!"
 
약속의 땅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세 개 대륙의 접점이며, 나일강, 유프라테스강, 지중해라는 문명의 발상지 한가운데 있었다, 수많은 제국이 명멸해가는 복판에서 가나안은 피와 살이 튀는 땅이었다, 그런 땅에서 패망과 오랜 세월의 비극을 겪으면서 비로소 이스라엘이 깨달은 진리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런 진리를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체득했고, 잊지않기 위하여 마사다의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수상의 발언은 이런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스라엘 국가는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문제에 대하여 외부기관이 결정권을 가지도록 동의한 적이 없다" 이 발언은 이천여 년 동안 나라를 잃고 떠돌며 학살을 당했던 고난의 세월이 터득시킨 발언임에 틀림없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널 때부터 지금까지 노예를 벗어나려는 자기 민족의 자유를 향한 전쟁이었고 전진이었다, 이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게 가위바위보로 주인을 결정하라 할 것인가, 강한 자만이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 법이고, 무기를 만드는 자는 지배자가 되고 방패를 만들지 않는 자는 노예가 된다는 진리는 돌도끼로 전쟁을 할 때부터 미사일로 전쟁을 할 때 까지 인류문명이 만들어 놓은 진리였고, 그 전쟁의 진리를 이스라엘의 DNA에 깊숙이 새겨놓은 것도 진보하는 문명과 인류였다,

하마스는 국가가 아니라 테러단체이다, 그것도 민가에 숨어서 민가를 향해 로켓포를 쏘다대는 비겁하고 악랄한 단체이다, 저런 테러단체를 친구로 둔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예정된 것이다, 저런 단체와 협상을 하는 국가의 국민들은 역시나 역사의 비극의 주인공이 될 뿐이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런 진리를 모르는 족속들에게 비극은 항상 준비되어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위험한 단체를 이웃에 둔 나라가 수행해야 할 전쟁의 교과서이다, 위험물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면 위험은 계속될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대한민국에게도 꽉 들어맞는 모델이다, 이스라엘의 전쟁에 분노해야 할게 아니라 이스라엘처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슬퍼해야 할 족속들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민간인 틈에 숨어서 전쟁을 수행하는 하마스의 팔레스타인 족속들도 비극적인데, 하물며 적국에 군자금을 퍼주고 핵 개발까지 도와주고, 그 핵을 평화라고 사기치는 사람들이 정권을 운영하고 대통령까지 해먹는 족속들이 있다면 그 국민은 이미 비극의 주인공이 된 준비를 완료한 상태이고, 그 비극은 틀림없이 팔레스타인의 수백 수천 배가 될 것이 틀림없다,
 
 
 
비바람

출처 : 비바람의 熱血冷話
글쓴이 : 비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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