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가을 장터에는 씨름판이 열린다.
추곡 할 시기쯤엔 더울 시끌 벅적한 씨름판이 생기는데 그 씨름판에는 건장한 청년이 온갖 폼을 잡고
기름기로 번질거리는 근육질 몸매를 이리저리 불뚝대며 자랑한다.
씨름판 얼굴 마담격 이라고나 할까 가히 힘깨나 쓸 것 같은 모습이다.
청년과 어른들 내기 씨름판도 열리는데 그 청년을 이긴 사람을 본적이 없었다.
그 씨름판엔 으례히 손님 모으기 오픈게임이 열리는데 이른바 꼬맹이들 씨름판이 마수거리로 열린다.
취기가 올라 버얼개진 뚜쟁이 아저씨의 온갖 육두문자의 질펀한 입담이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잡고
구경꾼들 사이 쌀밥에 보리알 끼듯이 까맣게 끼어 박힌 빤빤머리 사내들을 모조리 불러 모은다.
거긴 애들은 가라 라는 말은 없었다.
키 순서대로 적당히 편을 갈라서 세판을 거푸 이기면 상으로 공책 한 권이나 연필 한 자루를 주는데
정말 피튀기는 결전이 벌어진다.
그 시절 꼬맹이들의 헤어스타일은 상고머리나 빤빤머리가 주종인데 상고 머리도 결국엔 도장부스럼 유행 때문에 빤빤머리로 돌아온다.
입성도 변변치 않아서 난닝구 걸치기 또한 그만저만 던 시절이었고
헛배 앓아 불룩해진 배엔 땀과 먼지가 얼룩이져 때국이 줄줄 흘렀고 옆모습으로 보자면 경사진 가슴밑으로 내려가다 갑자기 튀어오른 똥배를 뒤로보면 믿믿하지만 그래도 약간 살짝 튀어나온 엉덩이에 두 다리는 가느리 해서 어디 제대로 힘 한번 못쓸것
같은 모습들
이 모습이 내 어린 시절의 가분수 같은 모습 들이었다.
그래도 신작로에서 먼지피워 달렸다 하면 시오리 쯤은 휑하니 내 뺃고 모르긴 해도 칼-루이손 정도는
저 뒤에서 먼지만 마셨을 것 같은 느낌(지금 생각하자면)좌우당간 대단히 빨랐다고 자부 한다.
힘 쓰는건 또 어떠했나 하면 나뭇짐지고 산내려오는 삼람은 없고 나뭇단만 둥실둥실 내려 온다는 게
거짓은 아니었다. 그리하다 보니 키도 안크고 고만 고만들 하던 때 이었던 것이다.
각설하고
씨름판은 이내 막걸리 취기 만큼 붉게 달구어져 가고 한쪽 구석에는 패자의 숨결이 거칠어져 작은 분노의 항의에 돌아 오는건 호된 주먹만한 알밤 세례에 고무신들고 찔끔거리며 퇴장하기 일쑤였다.
전후세대? 뭐 제데로 먹은것이 있어야 크지 체격이 작을 수 밖에 쉬운 상대를 만나 가볍게 두 판을 이긴 나는 의기양양하게 내 손에 쥐어질 한 권의 공책에 흠뻑도취 되었고 드디어 3회전. 상대는 학교 근처에사는 쎈 놈이었다. 그 시절 이야 읍이나 학교 근처에 산다하면 산다하는 축에 끼었다,
아뭏튼 고기 근 깨나 먹고 자란눔 같아 보였다. 씨름이 시작되었고 적당한 순간에 녀석의 안 다리를 후릴 요량으로 움켜쥔 녀석의 빤츠를 당기며 용을 쓰려는 찰나 어랍쇼 녀석이 엉덩이를 뒤로 살짝 빼면서
밀어 붙이는 반격이 참으로 대단했다.
나는 주춤했고 뒤로 서너걸음 물러서면서 다시 자세를 추수린 다음 재차 공격에 나서고자 자세를 최대한 낮추는 사이 녀석의 가공할 공격에 어디서 인지 찌이익 금속음이 귓전을 스쳤을 때도 한판승부는 계속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설마 네놈거지 내거겠냐 하는 생각이 들무렵
나는 가랑이 사이가 허전함을 느꼋다.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어버렸고
작년 한 해 동안 사계절 내내 주인과 고락을 같이했던 힌 줄무늬 검정 무명빤츠 는 그 수명을 다한 채 숭고한 나의 천기를 누설시키면서 짧은 비명속에 한 시대를 접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사나이가 이대로 물러 설순 없다하여 녀석의 빤츠를 잡아채고 후린끝에 녀석의 무릅을 꿇렸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궁한 마음에 우선 거시기부터 두 손으로 가렸지만 군중들의 머리 속에
입력된 파노라마 같은 볼거리는 어찌 지울수 있었으랴 . 오호 애재라.
머리를 숙이고 벗어논 고무신을 양손에쥐고 잽싸게 앞뒤로로 가리고 퇴장할 찰라
어느 작은 여인의 초롱한 눈망울이 띠요옹 마주쳤고 난 어찌할바를 몰랐다.
야~이~씨 기지배야 너 볼거 다봤으니깐 내 인생 책임져 차마...........
그말은 훗날 꿈에서나 해보고 싶은 희망 사항이 되어버렸고
좌우지간 그날 나는 완죤히 새 됐었다.
그래도 공책으로 대충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는데
만약 연필을 상으로 받았다면
과연 연필로 어디를 카바 했을까 ......... 무지하게 고민 했을 것이다.
이제는 그녀의 예쁜 얼굴도 씨름판의 모래알처럼 부서졌지만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야뭐 내인생 책임져주는 공주병 아내와 알콩달콩 살고있지만
가끔씩 도둑맞은 천기누설을 되돌려 받고 싶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
.
.
오! 아름다운 날들
풍금소리 따라 하늘을 둥실 날아올라
고향의 숲과 강을 따라 서서히 유영한다.
숲은 예전처럼 푸르게 침묵하며 쉬고있고
강(江)또한 예전처럼 한낮의 햇살에 무수한 비늘을 반짝이며
오늘도 변함없이 고향의 허리를 휘돌아 간다.
봉황정 누각엔 풍류가 끊긴지 오래
잠시 머물다 가긴 너무도 오래 비워둔지라
야위어가는 어머니의 가슴처럼
고향의 강 물골도 슬프도록 가늘게 야위어간다
이제는
기억속의 고향도 흐릿해 간다
살아온날을 세는것보다
살아갈 날을 세어가는것이 더 빠르기때문인가 보다
아! 옛날이여.
2009.3.10자 채위종 친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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