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잡는 마취사고


쌍꺼풀 수술과 치질수술 같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을 받다가 숨지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술을 하기전 전신마취나 수면마취를 받았다가 사고가 난 경우인데요. 그래서 마취 사고라고 흔히 불리지만 정작 유족들이 병원의 과실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은게 현실입니다. 늘어나는 마취사고의 원인과 의료분쟁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년동안 병상에서 거의 식물인간처럼 지내 온 53살 신점순씨. 기억력도 거의 없는 데다 말도 거의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신씨는 지난 2007년 유리에 다리를 다쳐 다른 병원에서 일곱 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수술은 어찌된 일인지 신씨를 혼수상태로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녹취> 최유진 (의료사고 피해 가족) : “겉에만 조금 살짝 찢어지다시피한건데 너무 가볍다고 할 수 있는 수술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데 그런 거에서 이렇게 혼수상태 와 가지고 이렇게 됐다는 게..“

 

신씨의 가족들은 당연히 수술을 하기위해 했던 척추마취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여겼지만 병원측의 생각은 너무 달랐습니다.

 

<녹취>최금석 (의료사고 피해 가족) : “원인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원장이란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되겠냐고. 우리 아무리 무식한 사람도 마취 사고라는 거 확실히 아는데. 멀쩡히 들어간 사람이 혼수상태로 나올 때는 마취 사고라는 거 벌써 알잖아요.“

 

병원 측은 여전히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고 결국 가족들은 소송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녹취> 최유진 (의료사고 피해 가족) : “그 사람들 입장에서 좋을지 몰라도 저희 입장에선 너무 힘들다는 거죠.시간도 길고 그리고 저희들 심적인 부담도 그렇고, 돈 이런 것도 너무 여러 곳으로 많이 나가고. 생활 자체가 풍비박산 이 나잖아요.”

 

김윤기 씨도 악몽같은 마취 사고의 피해자입니다. 지난 2007년 육군 하사였던 김씨의 아들은 치질 수술을 받다 숨졌습니다. 김씨 아들 역시 수술을 위해 마취를 받았습니다.

 

<녹취> 김윤기 (의료사고 피해 유족): "그 당시에 치질 수술로 목숨을 잃는다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생각 못했던 사실이고 생각이나 마음의 준비를 하다 이런 일을 당하면 덜 놀라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건 생각지도 못했다가 갑자기 일어나니까"

 

병원 측에서는 처음에는 100% 자신들 과실이라고 확인서까지 써 줬지만 나중에는 법대로 하자며 태도를 바꿨습니다. 김씨는 힘든 싸움 끝에 마취로 인한 사망 가능성도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결국 재판에서 이겼습니다. 수술 직후 심한 경련을 일으키는 김 씨 아들에게 병원은 적절한 응급 치료를 하지 않았던 점을 법원이 인정한 것입니다.

 

한 대학병원의 전신 마취 수술 현장입니다. 우선 혈관에 주사하는 정맥 마취제로 수면을 유도합니다.

<녹취> 마취과 전문의 : "환자가 프로포폴(정맥 마취제)이 들어가면서 주무시는 거예요. 환자가 숨을 잘 못 쉬거든요 이게 들어가면."

 

그래서 환자가 숨을 쉴 수 있도록 기관 삽관 등을 통해 기도를 유지시켜 줍니다. 이곳을 통해 산소와 함께 흡입 마취제도 같이 들어가게 됩니다. 척추 마취의 경우 척추에 마취 주사를 놓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맥 마취제로 먼저 수면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녹취> 마취과 전문의 : "(마취 사고는)중간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시작하는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끝날 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끝나고 회복실에 나서도 사고 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따라서 마취 전문의는 환자가 회복될 때까지 전 과정을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하나라도 소홀히 할 경우 마취사고는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녹취> 김찬 (아주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 “간단한 수술 같은 경우는 안전할 거라고 생각을 잘못 알고 있는 거죠. 그렇지만 실제로 사고가 보고되는 예도 종종 많아요. 이거는 심폐소생술 할 수 있는 마취과 입회하에 간단한 수술도, 그렇게 안 하면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 있는 여지는 많습니다.”

 

마취 사고는 소규모 병원이나 개인 병원들에서 비교적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병원 관계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대부분 마취 전문의가 없거나 응급 설비가 열악한 환경 탓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성형외과나 피부과, 치과 의원 등은 출장 마취 의사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출장 마취 의사의 경우 마취 시술을 한 뒤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아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대처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녹취> 피부과 전문의(음성 변조) : “대처 능력이 아무래도 마취의 전문의보다 경험이 미숙하기 때문에 그런 대처 능력이 떨어지게 돼 있고 그러다 보면 사고가 생겨 ...”

 

전신마취보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수면마취는 과연 어떨까? 수면 마취는 환자를 깊게 잠들게 해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전신 마취와 달리 환자가 자기 힘으로 호흡할 수 있고 인공호흡기도 필요치 않아 마취과 의사가 직접 처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지방흡입 성형수술이나 임플란트 치과치료를 할 때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면 마취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월 한 50대 여성이 수면 마취를 받은 뒤 지방 흡입 수술을 받다 숨졌고, 지난 해 12월에도 40대 여성이 지방 흡입 수술을 위해 수면 마취를 받은 뒤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지난 해 3월에는 또 다른 20대 여성이 쌍꺼풀 수술을 위해 수면 마취를 받다가 숨졌고, 지난 해 2월에는 20대 여성이 성형외과에서 턱 수술을 받은 직후 숨졌습니다.

 

<녹취> 피부과 전문의(음성 변조) : “현실적으로 합의에 의해서 해결되는 게 훨씬 많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케이스 다 합친다면 그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고가 발생할 것으로...”

 

수면마취를 가볍게 생각해 병원이 응급상황에 대비를 하지않는 경우, 주로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집니다

 

<녹취> 황재현 (서울아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 “수면 내시경 같은 시술을 할 때에도 꼭 마취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그런 호흡 관리를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그런 전문의들이 같이 상주하는 그런 환경에서 시술이 이뤄진다면 아마도 그런 의료사고는 굉장히 줄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수면 마취제로 쓰이는 약물 자체의 위험성 논란입니다. 맑은 우유 빛깔의 프로포폴은 깊은 수면에 빠르게 빠지게 하고 빠르게 깨는 특징이 있습니다.

 

<녹취> 김찬 (아주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 “마취라는 건 빠른 시간 안에 마취가 유도될 때 괴로움을 느끼는 유도제가 많거든요. 이건 오히려 하면서 기분이 좋아져요. 수면 내시경을 한다든지 이렇게 했을 때 간단한 수술 할 때 기분이 좋단 말이에요.”

 

현재 성형외과나 치과 등 일선병원과 수면내시경 등에서 수면마취제로 프로포폴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수면마취제는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엄격히 관리되고 있지만, 프로포폴은 아직 마약류에 포함되지 않아 사용하기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병원들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포르포폴이 남용되는 경구가 늘고 있습니다.

 

<녹취> 성형외과 의사(음성 변조) : “저희가 10년 전에 쌍꺼풀 수술 할 때는 수면 마취 없었습니다. 그 때는 단순하게 좀 참으세요. 하고 간단하게 끝냈는데, 요즘에는 또 세태 자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조금이라도 불편한 거 싫어해요 이러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까 수면 마취 많이 씁니다.”

 

하지만 최근 수면 마취 사고에서 사용된 마취제는 대부분 프로포폴 이었습니다. 프로포폴은 마취 효과와 치사량 사이의 폭이 아주 좁아 적정 사용량을 조금만 초과해도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녹취> 김찬 (아주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 “이 약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그 다음에 누가 심폐 소생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해야지 안전하죠. 이 약은 어느정도 용량에 도달하면 무호흡 상태가 30초 내지 1분 가기 때문에 그 상황을 놓치게 되면 사고가 얼마든지 날 수 있는 위험한 약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이미 프로포폴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국과수는 지난 2003년 의료행위 중 프로포폴을 투여할 경우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해 사망할 수 있다고 학계에 보고한 바 있습니다.

프로포폴은 수면 마취 뿐 아니라 전신만취나 척추 마취 때 수면 유도제로 쓰이기도 합니다.

지난 2006년 경찰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던 20살 윤 모 군은 지난 해 1월 서울의 한 치과에서 턱 관절 수술을 받기 위해 전신 마취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의식을 잃었고 결국 숨졌습니다. 전신마취 당시 수면유도에 쓰였던 약물 역시 프로포폴이었습니다.

 

<녹취> 이상석 (상계백병원 마취과 전문의): "마취 관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험 자체도 약이 가진 위험성하고 연관 있는 부분으로써 혹시 약을 투여했을 때 발생하는 혈압저하 호흡억제 이런 사항들을 바로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수면 마취를 관리해야 되는 것이 위험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마취 사고로 추정되는 의료 분쟁이 잇따르고 있지만 정작 유족들이 이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은주 씨의 어머니는 지난 2007년 마취를 받고 무릎 골절 수술을 하다 뇌사 상태에 빠지면서 숨졌습니다.

 

<녹취> 이은주 (의료사고 피해 유족) : "죽으리라곤 저희도 뭐 0%의 가능성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해당 병원에서는 원인이 미상이래요. 사망원인이.."

결국 부검까지 했지만 결과는 의사도 손쓸 수 없는 폐색전증으로 나왔습니다.

<녹취> 이은주 (의료사고 피해유족): “대한민국은 솔직히 의사들을 너무 관대하게 대해 주는 것 같아요.  자기 부모 어머님. 형제자매가 아무것도 아닌 병으로 죽었다면 의사들한테 관대할 수가 없잖아요.” 마취 사고만의 특수성도 유족들에게 불리하다고 합니다.

 

<녹취> 서상수 (의료 소송 전문 변호사) : “마취에서 만약에 사고가 있었다면 일반 진료하고 달라서 수술이 완전히 종결되고 사고까지 수습이 된 다음에 전체적인 진료 기록이 작성된다는 측면 이런 것 때문에 피해자 측에서 마치 사고 라고 주장하려고 해도 전후 사고에서 마취 사고로 갔다고 주장할 수만 있지 구체적인 어떤 잘못이라고 집어서 말하기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그래서 마취 사고라고 의심될 경우 진료기록을 조기에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녹취>강태언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 : “어떤 마취제를 썼는지 어떤 용량으로 썼는지 또 어떤 방법이 투입됐는지에 대해서 환자들이 증거를 갖고 있는 게 없기 때문에 마취로 인한 사고 발생했을 때에는 의료인이나 병원 관계자들의 최초 증언을 녹음한다거나 또는 최초의 마취 수술 기록을 복사해서 확인해 본다거나....”

 

한번이라도 잘못되면 숨지거나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끔찍한 마취 사고. 과연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 지 통계조차 잡히지 않은 채 수술실의 공포로 남아 있습니다.

 

송창언 기자   입력시간 : 2009.04.19 (22:57)  http://news.kbs.co.kr 에서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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