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 전쟁]③ 무역많은 한국, 피해도 많다

손희동 기자 sonny@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2012.10.01

 

러시아는 9월 1일부터 외국산 차량에 대해 폐차처리 비용을 차값에 매기는 이른바 ‘사용세(utilization fee)’ 부과에 들어갔다. 세율은 차값의 30% 정도로, 이를 적용하면 차 가격은 종전보다 10~15% 가량 올라간다.

이는 러시아에서 국민차로 자리 잡은 한국차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유럽비즈니스연합(AEB)에 따르면 올 1~7월까지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는 러시아 브랜드 아브토바즈의 라다(29만7825대)지만 판매량은 전년대비 13% 감소했다.

라다에 이어 쉐보레와 르노가 각각 2, 3위에 올랐고 기아차(10만8106대)와 현대차(10만3545대)가 전년대비 20% 이상의 판매증가를 기록, 4위와 5위를 차지했다. 러시아는 현재 유럽 내 단일 국가로는 가장 많은 차가 팔리는 시장이다.

하지만 사용세 부과에서 보듯 러시아에서도 갈수록 보호무역 조치가 강화되고 있어 한국차들이 꾸준히 판매증가를 이어갈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러시아는 자동차 외에도 데스크톱과 노트북 등 컴퓨터 시장에서도 관세인상을 추진하고 있어 최근 판매고가 늘고 있는 국내 IT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 한국 상대 무역규제 갈수록 늘어

갈수록 거세지는 각국간 보호무역 전쟁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자국시장을 지킨다는 이유로 한국기업을 주 공격대상으로 하는 각국 무역당국의 칼끝이 날카롭다.

최근 한국무역협회가 세계무역기구(WTO)의 자료를 인용, 직접적인 보호무역 조치라 할 수 있는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의 조치에 한국이 해당된 경우를 찾아 집계한 결과, 올들 16건이 늘어난 122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식적인 제소와 관련이 있는 것만 꼽아봐도 이 정도이고, 수입관세 인상이나 특별세 도입, 자국산 사용의무 부과, 수입절차 강화 등 수입상품의 경쟁력 약화에 초점을 맞춘 간접적인 조치까지 포함하면 규제는 훨씬 많아진다.

코트라가 전세계 주요 66개국에 설치된 자사 무역관을 통해 조사해 본 결과, 올 들어 8월말까지 24개국에서 44개의 보호무역 조치를 새로 시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들은 지적재산권과 반독점법, 기술표준 위반 등 주로 내국법에 기준해 한국 기업들을 압박했다. 애플의 삼성전자 소송이나 코오롱 방탄섬유 판매금지 처분에서 보듯, 법적 조치를 동원해 아예 한국산 제품의 진입을 차단하려 한 것이다.

반면 브라질과 멕시코,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의 경우 수량제한이나 통관절차 강화, 수입관세 인상, 자국산 사용의무화 등을 강조했다. 이는 선진국의 경우처럼 수입을 원천 차단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즉각적으로 효력을 발휘한다는 데서 부담이 적지않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수입물량이 점진적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어 대책을 만들지 않으면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다.

올해 시행된 각국의 보호무역 규제 <자료:코트라>
◆ 비상등 켜진 수출…경기도 안좋은데

외신들은 전세계적인 보호무역 기조속에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한국의 수출현황을 분석하는 기사에서 “수출 데이터를 보면 한국 역시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한국에도 높아지는 무역장벽의 경고음이 들려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회복되던 수출은 올 들어 갈수록 주춤해지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누적 수출규모는 3627억달러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의 3683억달러보다 1.5% 가량 감소했다. 8월만 하더라도 430억달러에 그쳐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으며 1년전에 비해 6.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흑자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줄어드는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다. 그마저도 8월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23억6000만달러로 전달의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출둔화는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재정위기의 진앙지인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모두 극심한 수출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브라질과 러시아, 호주 등 자원부국들도 글로벌 수요둔화에 에너지 수출길이 막히자 수입규제 강화에 열심이다.

◆ 보호무역 강화하는 신흥국…다변화되는 이슈도 초점

수출길이 막히니 각국은 너나 할 것 없이 보호무역 카드를 활용, 자국시장 보호에 나섰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같은 움직임이 달가울리 없다.

최근 들어서는 선진국보다 신흥국들이 규제강화에 열심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보호주의 정책을 가장 많이 도입한 국가는 러시아로 모두 64건이었으며 뒤를 이어 아르헨티나(53건) 그리고, 인도(24건) 순이었다. 적용 품목수로 보면 베트남과 베네수엘라, 카자흐스탄 순이 가장 많았고, 대상국가로 보면 중국이 으뜸이었다.

김경훈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신흥국은 경제위기를 맞아 선진국과 달리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자국 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자원 보호조치를 동원해 전략산업을 수호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입규제 방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관련 이슈가 환경이나 안전, 기술 등 무역 외적인 부분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점도 국내기업들에게 과중한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 실제 대기오염 물질이나 환경 호르몬 배출량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수입장벽을 높이는 국가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정권 교체기를 맞아 각국 정치권이 자국 시장 보호를 정치적 이슈로 설정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신한금융투자 한범호 연구위원은 “경기부양 관점에서 자국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거나 관계 법령의 차별적 적용과 같은 우회적인 방법들이 추가로 나타날 수 있다”라며 “미국의 경우 대통령 선거, 중국의 경우 지도부 이양과 같은 정치적 이벤트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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